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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색스폰 연주자 문승호 시인을 만나보다.

종명이 2017. 8. 10. 16:23


▲ 고등학교 동기생 문승호 시인과 박종명 필자


지난 2017년 8월 7일 초대를 받아 한번 꼭 방문하고 싶었던
청주대성고 박원규 전 교장이 살고 있는 수안보 근교에 있는

그리실 마을을 청주에 사는 27회 동기생 문승호 친구를 청주에

내려 가 만나 친구 자가용에 동승해 내려갔다.


이날 만난 문승호 시인 친구가 쓴 시집 한권 본인의 칠순기념으로

발간된 책을 두달전 우편으로 보내 와 내가 시간이 될적마다 그의

시를 어 보면서 문승호 친구를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 시집을 두권이나 출간한 문승호 시인이다



같은 동기이지만 학교 다닐적 같은 반을 한번도 안해 모르고 지나다

나의 활동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시집도 보내 주면서 서로를

조금씩 알게되었는데 그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아 이날 약속해 만났다.


청주에서 친구와 9시경 만나 그리실 마을에 11시정도 되어 도착하니

집주인 박원규, 이은자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 문승호 친구 박원규(中) 집주인과 박종명 필자




▲ 박원규 이은자 부부와 기념촬영




▲ 박원규(左)  문승호  박종명 동기생들


김옥길 전 이화여대총장 별장을 방문해 흉상을 배경삼아 담은 기념사진




▲ 김옥길 전 이화여대총장 흉상이 보였다


전 이화여대 김옥길 총님의 별장이라고 그곳에 사는 박원규 부부의

안내로 구경을 하였는데 관리인이 없는지 옛날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대문만 열려있어 구경하는데는 제약이 없었다.


그런데 시설 구경을 하다보니 관리소홀로 지금은 방치해 놓은 느낌이

들어 수안보 관광지에서 가까운  박달재 고갯길에 위치해 관광지였다


조금만 손질하면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는 시설인데 이화여대측에 기증해

지금은 이화여대 소유라고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이화여대측에서 관리를

 제대로 해 주었으면 하는 본인의 생각을 전해 보고싶다












▲ 박원규 이은자 부부가 손님접대 하느라 부엌


밖에 다녀오니 목이 마르고 갈증이 심했는데 감주를 내다 주어서

너무 맛있게 마시고 나니 시원해 갈증이 해소 되어 너무나 고마웠다



▲ 박교장 집에서 문승호 친구의 색소폰 연주를 들어 보았다.


나는 색소폰 악기만 가져오면 연주가 되는줄 알았는데 커다란

스피커 한개와 악보대등 완전한 노래방 시스템을 구비해 가져왔다.


그러기에 집에서 심심할때 아내와 노래방처럼 연주하면서 아내는

노래도 하면 좋겠다고 말하니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하였는데

부부간 취미생활이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친구가 부러웠다.



▲ 악보를 보고 열심히 연주하는 문승호 친구모습



▲ 올해 고희 70세 나이에 스마트폰도 잘 다루는 친구다


문승호 친구에게 부탁해 자신이 살아 온 길을 회상해 보고

글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해 보내 온 글 전부를 내용을 보니

단편 드라마처럼 어머니가 일찍 운명 고생하면서 금까지

성실하게 살아 온 인생 기록 같아서 메일 전문을 공개한다.



▼ 70평생 살아 온 길을 뒤돌아보며

 

산 넘고 물 건너 굴러온 지 어언 칠십년! 되돌아 굽어보며

아쉬움 접고 여기 기억의 조각들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짚어 보고자 한다.


내 나이 일곱 살 되던 해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두고 심장병
으로 돌아가셨다. 철없던 일곱 살에 돌아가셨으니 뭐를 알겠는가!


그러나 나는 어머니 없는 설움을 공부로 달랬다. 남들이 놀 때
나는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공부도 내 뜻대로만 되지 않았다. 새어머니의 전처 자식
에 대한 역정에 열심히 공부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역정에 바로 위형님은 초등학교도 중퇴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고, 누님은 초등학교4학년 때 학업을 접고 가사에 전념하였던
것이다. 정말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세월이 흘러 새어머니 자식들이 하나 둘 태어나면서 갈등은 더욱
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학업에 대한 열의는 누구도 꺾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주성중학교 2학년 때 전교수석을 하여
우리 학급의 위상을 빛냈었다.


그 결과 담임선생님께서,"우리 학급은 문승호가 전교 수석을 하는
바람에 우리 학급 성적도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그 고마운

뜻으로 너희들은 매일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문승호 학생에게

꾸뻑 절을 하고 들어가기 바란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괜히 요란을 떠는 것 같아 괜히 쑥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대성고로 교명이 변경되었지만,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5급(지금의9급)국가재경직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시험을 보고 합격통지서가 늦어, 떨어진 것으로 알고 군
복무를 위해 자원입대 지원서를 냈다. 며칠 후 난감한 일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합격통지서도 날아오고 입영통지서도 날아왔다.


그렇지만 이 위기를 어른들에게 자문을 받아 입영을 연기하고 공무원
근무를 먼저 하였다.
1967년 12월에 석교초등학교로 발령받아 근무

하다 2년 후에 군 입대를 하였던 것이다.


제대한 후 충청북도교육청 총무과, 보은교육청 관리과, 다시 충청북도
교육청 기획감사담당관실 등에서 근무하였다. 교육지도계에서 「정직.
질서.창조」라는 정화이념아래 질서계도 업무를 거리 현장에서 실천
하다 1984년 2월 25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 쇠붙이처럼 단단
한 날개가 꺾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직 사무관이 되어야겠다는 일념
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근무에 열중하였다.


5년여를 그렇게 해 왔음에도 교통사고 환자라는 이유로 내게 시험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응시의 기회를 얻어 1992년에 그 어렵다는 사무관 시험
에 당당히 첫 번째로 합격하여 그해 2월 15일자로 충주공고 사무관으로
임관하는 영광을 안았던 것이다.


그 후로는 꺾인 날개로 인하여 제대로 날 수가 없어 기를 펴지 못
하다가 오늘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我)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글을 써는 봤지만 그 기초를 다지기 휘해 전문가
들로부터 많은 지도를 받아 수필 창작을 하여 1998년 3월 15일 수필가로
등단하는 영예를 안았고, 계속 정진하여 1999년 3월 15일에는 소설가로,
2001년 6월 15일에는 시조를 등단하는 영예를 안았던 것이다.


비록 수박 겉핥기일지라도 세 가지 분야에 걸쳐 모두 등단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치마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경륜을 바탕으로 근무하면서, 2007년 6월 충청북도
보은교육청 관리과장을 끝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6월말 공로연수에 들어가자마자 그해 7월 1일자로 집근처에 있는
실내스포츠센터 골프교실에 등록하여 기초부터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운동도 교통사고 때 다친 어깨로 인하여 더 이상 못하고,
탁구로 전향하여 지금껏 즐기고 있다.


그러다가 음악에도 취미와 조예가 깊어 기타를 꾸준히 치고 있었는데,
 마침 주위에서 기타 말고 또 한두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색소폰을 권하였다.


처음엔 망설였다.악기 값도 비싸고 폐활량이 풍부해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큰 맘 먹고 학원에 등록하여 강사로부터 이론을 배우고 부는 요령
을 듣고 따라 해봤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복습해 보니 생각처럼 불어
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남보다 두 배 이상 하루에 4시간씩 연습에 연습을
강행하여 9개월 만에 어지간히 터득했다.


그 후로는 하루에 1시간 이상 할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색소폰을 배운지 벌써 7년이 지나 비록 프로선수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로서 노래교실, 요양원 등 곳곳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니, 지금 생각
하면 색소폰 배우기를 잘했다고 자부해본다.


글쓰기는 한국공무원문학협회, 청풍문학회, 충북시조문학회 등에 가입
하여 나름대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교통사고 장하기 전에 직장 상사가 내게 지어준 별명 「차돌멩이」!!

그렇다 언제나 차돌 같은 심정으로 신이 허락하는 한 인간 백세를 넘어
무한 정진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





출처 : 청주대성고(舊 청주상고) 27회 동창회
글쓴이 : 박종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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