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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 오성기에 쏠린 기대 > 1만여명의 중국인이 지난 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새해 첫 국기게양식 행사를 보면서 환호하고 있다. 중국은 1월1일을 '1년의 첫날'이라는 의미로 '위안단(元旦)'이라고 부르며 대부분의 직장이 3일까지 쉰다. /베이징신화연합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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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쳤다. 명실상부하게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 떠올랐다. 향후 10년 내 미국까지 제칠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는 옛말이다. '대국굴기(大國堀起 · 대국이 우뚝 일어서다)'를 향해 달려온 중국은 이제 '유소작위(有所作爲 · 적극 참여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를 국가적 슬로건으로 내세워도 손색없게 됐다.
일본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것은 1964년.도쿄올림픽 개최가 도약의 계기였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반 삼아 2위 자리를 빼앗았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 이후 개혁 · 개방의 길을 30여년간 달려온 결과다.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 함께 묶이지만 중국은 나머지 3개국과도 달라졌다. 2010년 중국의 GDP는 5조7451억달러(IMF 통계).브라질(2조235억달러),러시아(1조4769억달러),인도(1조4300억달러) 등 나머지 3개국의 경제력을 합쳐도 중국에 한참 못 미친다.
◆미 · 중 양극 구도로 이동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됐다.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과 중국이 세계 질서를 공동으로 지배하는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더 이상 미국 홀로 지구촌의 관심사를 좌우하기는 어렵게 됐다. 물론 아직 중국의 힘만으로 관철시킬 국제적 이슈는 많지 않다. 그러나 미 · 중이 힘을 합쳐 못 이룰 일도 없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직후부터 이런 취지의 말을 해 왔다.
오는 19일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다. 세계가 지난해부터 주목해 온 일정이다. 각국 언론은 이 회동을 'G2 정상회담'으로 부른다. 후 주석으로서는 국빈 방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취임 후 2년 동안 세 번째로 맞는 국빈이다. 정상외교에도 여러 단계의 급(級)이 있다. 국빈 방문이 최고의 격이다. 공식 방문,실무 방문,비공식 방문과는 비중이 다르다. 오바마 행정부는 앞서 인도와 멕시코만 국빈급으로 맞았다. 북한핵 문제,글로벌 환율전쟁,세계적인 무역 불균형,대(對)테러 공조,기후 전략 등 '차이메리카'가 함께 풀어야 할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2차 대전 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 진영으로 나뉘었다. 이 냉전 구도가 국제질서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옛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미 · 소 양극체제는 도전받지 않았다. 1980년대 말부터 근 20년은 미국 독주 시기였다. 소련이 몰락한 자리를 어느 나라도 대신하지 못했다. '팍스 아메리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던 시대였다.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내세웠지만 정작 개혁도,시장경제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급속도로 위축됐다.
미국과 겨뤘던 옛 소련의 축을 지구촌의 새 파워,신(新)중국이 맡고 있다. 미국과 수교 39년,중국은 위상 자체가 달라졌다. 미국과도 경쟁과 공존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G2 시대,차이메리카가 다져진다. 중국은 오는 4월 베이징 BRICs 정상회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정식 회원으로 초청했다. 남아공을 포함,새로운 BRICs 체제의 좌장을 맡겠다는 의도다. 중국의 패권이 전 세계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 중국
"중국은 미국의 은행." 지난 연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호주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제발 중국을 견제할 방법이 없겠느냐"며 자원부국 호주에 도움을 요청하며 한 언급이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조6500억달러(2010년 9월 말 기준)에 달한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다. 작년 3분기에만 1940억달러가 늘었으니 연말 기준으로는 훨씬 더 불어났을 것이다. 이 중 70%가 달러자산이다. 미국 국채 보유량만 9068억달러(2010년 10월 말 기준)에 이른다.
중국이 작정하고 미국 국채를 내다 팔기라도 하면….아찔한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뒤흔들릴 수 있다. 중국의 국부(國富)펀드인 CIC(중국투자공사) 투자 상황을 보면 '차이나 자본'의 약진세는 더욱 잘 드러난다. CIC가 지분을 사들인 미국의 알짜기업만 84개에 이른다. 월가의 특급 금융회사부터 미국 전력회사,캐나다 광산까지 투자 대상도 다양하다. 2000억달러로 출범한 CIC는 출범 3년 만에 자산이 3324억달러로 불었다. 해외자산만 800억달러가 넘는다.
특허 출원 세계 1위도 중국 기업(화웨이)이다. '짝퉁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는 것도 머지않아 보인다. 아직은 중국으로 진출한 미국 기업이 물론 더 많다. 그러나 미국 기업에 부동산까지 사들이는 중국 자본의 행보에 주목할 때다. 이것도 차이메리카 시대의 메가 트렌드다.
중국의 자본은 세계 곳곳으로 향한다. 지난해 10월 그리스 국채를 대량 매입했다. 연말에는 포르투갈 국채 매입 의사를 원자바오 총리 입으로 밝혔다. '재정불량국'이라며 모두가 외면하고 '투자 리스크'를 계산할 때 유럽 변방국 국채를 보란 듯이 사들이는 곳은 사실상 중국뿐이다. "돈으로 친구 만들기"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미국도 못하는 '세계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 채권시장에도 진출했다. 한국의 주식시장도 중국 자본의 가시권에 들어섰다.
◆경쟁과 협력,견제와 공생
중국이 세계의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보도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아프리카 각국에서 그래왔다. 중남미 요지도 그렇게 장악했다.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중국은 2008년 후반기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법에서 미국과 나란히 섰다.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온 힘이기도 하다.
중국에도 위협과 도전은 있다. 바로 곁에 있는 BRICs부터 경쟁국이다. 약진하는 신흥국 그룹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속도라면 인도가 머지않아 중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매년 8.3~14%씩 초고속 성장해 온 중국의 기세를 보면 '차이나 파워'는 한층 강력해질 전망이다. G20 회의장에서,무기로 삼은 자원 시장에서도,국제 분쟁지역에서도 중국의 위세와 영향력은 커져 갈 게 분명하다. '차이메리카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차이메리카Chimerica.중국(China)과 미국(America)을 합친 말이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금융의 지배(The ascent of money)'에서 처음 썼다. 중국이 상품을 수출해 번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면 미국은 재정 적자를 메우고 다시 중국 상품을 소비하는 식의 경제적 연결고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두 나라의 공생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