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기 힘든 분들 ★

박종명이 만나 본 희망 전도사 서진규 박사

종명이 2015. 5. 28. 11:07

 

 

▲희망연구소장 서진규 박사와 박종명 기념촬영

 

지난 5월26일 수원 인게동에 위치한 청소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오전 10시부터 희망전도사로 유명한 서진규 박사의 강연이 있기에

시간을 내어 강의장에 참석해 직접 그의 강의를 들어 보았다.

 

2009년에 수원에 강의를 왔을때도 유명한 서진규 박사 강의도 들어

보고 본인이 쓴 뉴스가 mbc와 해피수원 뉴스에 공개 된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군복 비슷한 복장에 검은 선그라스를 착용 기념 사진을

담기위해 안경을 쓰지 말라고 부탁하니 눈병이 나서 안된다고 해서

그당시 사진이 항상 보기에 조금 어쉬웠는데 이번에는 안경을 안썼다.

 

2009년부터 방송이나 인터넷 등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니 그의

인생 드라마가 너무나 힘든 삶속에서 희망을 일구어 낸 인생이었다.

 

각종 뉴스로 공개 된 뉴스가 많아 그의 강의 내용은 이미 들어도 보고

공개 뉴스를 본적이 있어서 강의를 들으니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강의 내용과 각종 뉴스에 공개된 자료를 보니 그는 미군 예비역 영관급

장교로 전역하였고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기록한 몇권의 책이 출간된  

유명한 작가이면서 요즘은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강사다.

 

1948년 경상남도 동래군의 어촌마을 월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엿장수 딸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언니,오빠와 2명의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중 한 사람은 미군 복무중 사고로 요절하였으며, 한 사람은 지능
의 발달이 비장애인에 비해 늦은 지적장애인이라고 한다.

 

어릴적 제천시로 이사, 동명초등학교와 제천여자중학교를 졸업후 풍문

여자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한국군 장교인 작은 아버지댁에서 살았다,

 

가난했던 학창시절에는 여학생 잡지를 교내 친구들에게 파는 아르바이트

와 부모님이 보내 주시는 돈으로 생활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후인 1967년 종로구에 있는 가발공장에서 사촌 언니와
같이 일했지만, 서진규 그 자신이 쓴 자서전에서 딴 생각에 사로잡힌
소녀라고 회상할 정도로 공장생활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1971년 21실 되던 나이에 친하게 지내던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식모를

구한다는 말을 들은 서진규는 미국을 가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온갖 말로 미국에 가겠다는 그의 결심을 꺾으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어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아버지가 

구해 준 비행기표와 100달러만 가지고 미국에 갔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 가서는 그는 한식당 아리랑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영어를 공부했으며, 1975년에는 한국인 합기도 사범이  너무 멋있게

보이고 좋아서 결혼도 하였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남편의 폭력으로 얼룩졌으며, 그당시 피신처로

생각이 되어 그는 미 육군에 사병으로 입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훈련병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살아 남겠다는 일념으로 어려움을

참아내어 3개월간의 훈련을 마쳤을 때는 200명중에 일등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일등병이 된 그는 대한민국 용산구의 주한 미군 부대에서 군수업무를 맡아

복무하다가 상등병 시절 주위의 권유로 간부사관을 지원하여 고된 훈련

을 잘 마치고 장교로 임관하였다.


장교 근무시절 그는 독일과 일본에서 해외근무를 하였으며, 1987년에 어렵게
메릴랜드 대학교 경영학과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마흔두살때인 1990년 하버드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미군 대위 신분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992년에는 하버드대학교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

언어학 박사과정에 합격하였다.

 

당시 서진규는 대학교공부에 필요한 일본어실력을 갖추기 위해 개인교사와
일본말을 잘 하는 아버지에게 일본어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려면 군인의 길을 접어야했기 때문에 1996년 11월
소령으로 전역하여, 20년이나 꾸준히 해온 군생활을 마감하였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국제외교사와 동아시아 언어학과에서 박사 학위(수료는
1999년, 박사논문통과는 2006년)를 취득했다고 한다.

 

내나이가 1947년생 한살위인 나이라 그당시를 함께 살아왔기에 사회분위기

를 잘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의 인생역정이 영화를 보는 듯 상상이 된다.

 

무대 바로 밑에서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느낌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그의 몸동작은 군인정신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런지 절도있고 빠른 순발력은

아직도 군인 서진규 소령을 보는 생각이 들정도로 민첩함을 느끼게 한다. 

 

 

 ▲ 무대위에 서진규 박사 강의모습

 

 

 

 

▲ 어머님 아버님과 어릴적 강사모습

 

 

▲ 무대위에 서진규 박사 강의모습

 

 

 

  ▲ 무대위에 서진규 박사 강의모습

 

 

 

▲ 강의중에 박수를 보내는 모습 

 

 

 

 ▲ 무대위에 서진규 박사 강의모습

 

강의 내내 달변인 그의 강의 목소리는 강약이 섞여 지루함을 못느껴

재미를 주는 강의였는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삶의 희망이 느껴져

희망 전도사라는 말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 무대위에 서진규 박사 강의모습

 

강의 내용중에는 자신의 딸 조성아 소령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모녀가 하바드대학 동문으로서 미군에도 같이 입대해 선 후배 장교가

 되는 사이가 된데 대해 긍지를 느끼면서 자랑했다.

 

내가 생각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엄마와 딸 사이다. 

 

 

 

 

 

▲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촬영모습도 보인다

 

 

▲ 기립박수도 치면서 그의 강의에 공감해 주었다

 

 

▲ 강의 후 악수를 청하는 수강 시민들 

  

 

▲ 강의후 무대 뒤에서 담은 사진

 

지난번 사진이 보기에 아쉬워서 이번에는 두번에 걸쳐 담아보았는데

카메라 조정이 잘못 되어서 보기에 조금은 아쉬운 사진이 되었다.

  

 

▲강의장을 떠나는 시민들과 기념촬영 

 

  

▲ 많은 시민들과 허그로 인사하는 모습

  

 

▲서진규 박사 인기가 수강생들에게 대단했다

  

 

수강시민들과 기념 촬영을 해 주었다

 

 

현재 조성아씨는 하버드대학교 졸업후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교육 장교로
복무하고 있으며, 서진규씨는 한국에서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 아래 사진 세장은 공개 된 사진들이 모녀의 모습이 아름다워 좋아보이기에

가져 와 포토샵 작업을 내가 해서 올려보았습니다 .

 

 

저서로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꿈꾸는 엄마로 산다는것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등 몇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