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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 밤의 풍경 너무 아름다워요

종명이 2011. 1. 21. 13:55

 

 

▲ 평화의 문앞 밤의 조경이 너무 아름다워요

 

1월19일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파크호텔에서 행사가 있어 가던중 몽촌토성역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평화의문앞에 정원나무마다 조명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모습들이 유혹하기에 일부러 들어 가

아름다운 야경 사진을 담아 공개 해 본다.

 

왜 영하온도의 추운 겨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식을 해 놓는지 궁금하던 모습인데 이유를 알아보니

많은 수의 작은 전구로 불을 밝히는 장치라 열이 많이 많이 나기때문에 과열로인한 화재사고가

염려되어 추운 겨울에만 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들이 구경하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너무 썰렁한 밤 분위기가

전기 낭비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날씨가 추워서 국가적으로도 에너지절약을 신경쓰고 있는

이때 공원안에 훤하게 장식한 시설들이 관람객이 적은 시간대에는 조명을 끄는 방법도 필요하다

 

관람객이 많은 시간대 휴일이나 날씨가 조금 춥지않은날에 관람객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

보는이가 적은 시간대에는 보는 사람들이 적어 낭비같으니 관리에 유동성이 필요한 시설이었다

 

저녁 7시 행사에 참석하기위해 내가 현장에 가본 시간대가 오후 7시경인데 구경꾼이 한사람도 없어

이런 제안을 해 본다 .시설잠당자의 현명한 운영이 필요한 장소같아 소개하면서 지적도 해 본다

 

 

 

 

 

 

 

 

 

 

 

 

 

 

백제문화를 꽃피운 천혜의 땅
백제 역사의 72.7%를 차지하는 한성백제
백제 하면 으레 공주나 부여를 떠올리나 그 지역에만 백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백제 역사의 72.7% 이상을 차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서울. 고구려에서 온 온조가 기원 전 18년 처음 백제를 세운 서울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 휘하 3만 대군에 밀려 공산성, 곧 공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약 493년간 백제의 도읍이 있던 곳입니다. 특히 ‘한성백제’는 백제가 수도를 지금의 공산성 즉 공주로 옮겼을 때의 ‘웅진시대’ 및 부소산성 곧 부여를 수도로 했을 때의 ‘사비시대’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명칭입니다.
이는 백제 문주왕이 수도를 공주로 옮긴 475년부터 성왕에 의해 다시 수도를 옮긴 538년까지의 ‘63년’과, 성왕 때부터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의 ‘122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지금의 서울에 수도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1600여년 전 백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올림픽 공원
백제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성백제. 전략적 요충지이며 문화와 교통의 중심지로서 선택되고 발전한 한성백제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바로 지금의 올림픽공원 지역입니다. 올림픽공원은 북으로는 학계에서 한성백제시대의 도성인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하는 풍납토성(사적 제11호)과 평강공주와의 로맨스로 회자되온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동으로는 이성산성과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서로는 석촌동 고분, 가락동 고분 등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외적의 방어에 매우 유리한 곳이므로 견실한 산성이 쌓이게 된 것이며, 신성한 땅으로 여겨 고분을 만든 것입니다.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몽촌토성(둘레 약 2.3㎞) 역시 한성백제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북쪽 적으로부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용 토성인 몽촌토성은 표고 44.8m의 야산을 중심으로 자연 구릉을 이용해 만든 토성으로 성 외곽에 해자와 목책을 두르고 있었습니다.지금도 해자 위치에 물을 가두어 놓아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해볼 수 있는데 곳곳에 목책도 복원해 놓아 성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한편 성내에서 초기 백제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와 기와 토기,자기,벼루,갑옷 등 각종 유물이 발견돼 이를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