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기 힘든 분들 ★

박종명이 최일구 전 mbc 뉴스 앵커의 강의를 들어보니...

종명이 2013. 5. 15. 10:17

 

 

 

▲ 강사 최일구 앵커와 박종명 기념촬영


지난 5월14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수원시 인계동 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 홀에서 수원
시민 인문, 교양 아카데미에 강사로 초청 된 최일구 앵커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굳이
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의가 있어 수원에 온다기에 가 보았다.

 

10분전에 도착하여 최일구 강사가 이미 강의장에 왔다고 하기에 만나려고 하니 관련 직원
이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사전에 부탁하였기에 못 만난다고 한다.

 

나로서는 mbc 시민기자로서 그가 mbc 근무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고 양주 mbc 연수원에서
시민기자 워크숍에 강의도 직접 해주고 함께 어울려 오락도 즐기면서 지난 추억이 있었
기에 일부러 만나보려고 갔었는데 기분이 조금 상했다.

 

마침 제지하는 직원과 와중에 최일구 강사의 모습이 보이기에 다가가 잠시 나를 소개했더니
반갑게 맞아 주어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나니 밖에 나가서 찍자고 권유해 밖으로 나갔다.

 

다시 한번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최일구 강사는 아직도 흡연을 하고 있어 담배한대
피우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자고 한 거 같았다.

 

나는 강의장으로 먼저 들어 가 무대 근처 앞자리에 빈좌석이 하나 있어 앉아 기다리니
바로 들어 와 맨 앞줄에 앉기에 불러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아 보기도 했다.

 

교육 담당자의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오른 그는 처음부터 코믹한 말투로 참석한 시민들이
웃어 교육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어릴적 꿈이 작가,가수, 기자,가 되려고 했다고 어릴적에 기타를 치던 자신의 모습 사진
을 공개하면서 그 꿈중에 하나인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험에 합격까지 하게 된
일화를 이야기 했다.

 

몇차례 도전해 기자가 되고 나서 그 당시의 이득렬 앵커 모습을 보고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되려고 노력해 앵커가 되어 하던 시절 있었던 일화들을 자신이 준비한 자료 방송
화면을 보여 주면서 실감나게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5월 10일 방송된 tvN "스타특강 최일구편"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
노력했던 최일구만의 독특한 뉴스화법 탄생 비화를 밝혔었는데 이날 강의 가운데도 그런
일화들을 이야기 해 나로서는 그를 좀더 알게해 준 재미있는 강의였다.

 

최일구 앵커는 "나만의 색깔을 찾기위해 딱딱한 어투가 아닌 부드러운 어투로 뉴스를 보도
했다고 하면서 일명 '최일구 화법'을 하게된 이유를 말했다.
 
최일구 앵커가 지난 5월 8일 mbc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조직으로부터 모멸감이 너무 컸다
고 하면서 사표를 제출 mbc를 사직하고 자리를 옯겼다.

 

내용은 최근 최일구 앵커가 강연을 다녔는데 MBC는 미리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문제 삼아서 인사위에 회부 정직 3개월에 이어 교육발령을 받은 마당에 미신고를 문제 삼아
주의나 근신도 아니고 정직3개월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일구 앵커는 27년 동안 기자로 일하며 열과 성을 다해 mbc에 근무해 왔는데 문제점을 잘
몰랐다고 해서 내린 결정에 김재철 사장을 비롯한 조직에 대한 잘못을 말하기 위해 광화문
세종로에서 후배들의 투쟁에 합류했었다.

 

그러다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후리선언 케이블 방송에서 모습을 보였는데 그의 인기로 볼때
mbc 입장에서 볼때는 무척 안타까운 잘못된 처사같아 큰 손해같은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이번 만남이 세번째인데 그를 볼때마다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서 항상 변해가는
그의 모습은 내가 꿈꾸는 미래를 보는 기분이 들정도로 내가 담고싶은 인물 중 한사람이다.

 

강의중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까지 부르면서 기존의 고리타분한 생각들을 변화시키고
앞서가는 그의 발상은 대단하고 방송에서 그의 말 한마디가 최일구 어록이 되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강의 가운데 재미있는 유모어를 섞어가면서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의
재치는 행사장을 나온 수강생마다 재미있었고 유익한 강의였다고 칭찬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천천동에 산다는 여성은 그가 표현한 19금 이야기도 코믹하게 이야기 하니 너무 재미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게 해 주었다고 최일구 강사에 대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모습은 나로서는 그와 기념사진도 찍고 너무 고마웠는데 강의후 

잠간이라도 그의 팬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져 함께 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했는데 전화로

확인해 보니 그날은 다음 행선지 약속시간에 바쁜 관게로 시간이 없어  미안했다고 하였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 악보에 해준 서명(시민기자 워크숍때 받은 서명이다)

 

오전시간인데도 그의 인기만큼이나 500석이 넘는 강의장에 빈자리가 없을정도로 많은 수강생
들이 참석했는데 최일구 앵커의 멋진 서명도 해 주고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강의후에 많은 팬들과 직접 만남을 만들어 보라고 최일구 앵커에게 부탁한다.

 

▲행사장에서 만나 사전 예고도 없이 포즈를 부탁하니...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취한 배려가 고마웠다

 

▲ 최일구 앵커의 정겨운 모습

 

▲ 갑작스레 부르니 의아해 처다 보는 모습

 

▲나를 알아 보고 환한 미소를 보여 준 사진

 

▲ 자신의 꿈을 적은 내용과 귀여운 어릴적 사진

 

자신이 어릴때 장래 되고 싶은 세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 최일구 앵커가 적은 자신의 소개가 재미있다.

 

처음에는 실제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 줄 알고 가족관계란에 가족과는 관계를 갖지않음

이라고 말해 가족이 없나 의아해 하기도 했는데 한참 지나 그 뜻을 알고는 많이 웃었다.

 

이처럼 강의중에 그가 말한 내용은 듣고 나서 한참 생각해 봐야 의미를 알게되어 웃게 민든다.

 

▲사전 자료준비가 완벽해 보였다

 

 ▲ 냉장고에 돈을 넣은 자료사진(이렇게 돈을 보관하고 사는게 소원...?)

 

▲ 강의 경험도 많은지 여유있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주차장에서 다시 한번 포즈를 부탁해 담은 사진

 

재미로 강의중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왜 최일구(崔一九)라고 했는지 알려 주었는데 그 이유가

1960년 11월생이라 그해 이승만 정권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발생한  4.19 학생데모가 일어난 해라

그의 아버님이 일구(一九)라고 했다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그가 만든 이유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라 그의 유모어 감각은 인정할만큼 대단한 아이디어 소유자 같아

그를 좋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 정서는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도 그런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왔기에 유명한 지금의 최일구가 되었다고 생각된다.